뇌과학이 밝혀낸 천재의 비밀: 신경가소성과 미엘린
뇌과학이 밝혀낸 천재의 비밀: 신경가소성과 미엘린

“나이 들면 머리가 굳는다.” “뇌세포는 죽기만 하지 재생되지 않는다.” “성인이 되면 새로운 걸 배우기 어렵다.”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상식들이다. 부모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거짓이라면?
최신 뇌과학은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의 뇌는 죽을 때까지 변한다. 70세에도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고, 80세에도 악기를 마스터할 수 있다.
비밀은 바로 ‘신경가소성’과 ‘미엘린’에 있다.
100년 동안 의사들이 틀렸던 이유
1906년, 스페인의 신경과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이 노벨상을 받았다. 뉴런의 구조를 최초로 밝혀낸 공로였다. 하지만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성인의 뇌에서 신경 경로는 고정되어 있고, 끝났으며, 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죽어갈 뿐이다.”
이 한 마디가 100년 동안 의학계의 절대 진리가 됐다. 의사들은 뇌졸중 환자에게 “더 이상 좋아지지 않습니다”라고 선고했다. 치매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 나이 든 사람들은 새로운 걸 배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8년, 스웨덴의 한 연구실에서 모든 게 뒤집혔다.
사흘그렌스카 대학의 피터 에릭슨 교수팀은 특별한 실험을 진행했다. 말기 암 환자들의 동의를 얻어, 새로 생성되는 세포만 표시되는 특수 물질을 주입했다. 환자들이 세상을 떠난 후, 그들의 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연구진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해마에서 새로운 뇌세포들이 빛나고 있었다.
50대 환자에게서도, 60대에서도, 심지어 72세 환자에게서도 신생 뉴런이 발견됐다. 하루에 약 700개씩, 죽을 때까지 새로운 뇌세포가 태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뇌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는 100년의 정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런던의 미로를 헤매는 사람들
런던은 미로다. 2천 년 역사가 만든 복잡한 거미줄. GPS도 종종 길을 잃는 도시다.
이 도시에서 택시 기사가 되려면 지옥 같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더 낫지(The Knowledge)’라고 불리는 이 시험은 악명이 높다. 2만 5천 개의 거리 이름과 2만 개의 건물을 외워야 한다.
보통 3-4년이 걸린다.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런던 구석구석을 누빈다. 집에 돌아와서는 거대한 지도를 펼쳐놓고 머릿속으로 길을 그린다. 10명 중 7명이 중도에 포기한다.
UCL의 엘리너 매과이어 교수는 이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성인의 뇌가 정말 변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뇌도 일반인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2000년, 그녀는 택시 기사 16명과 일반인 50명의 뇌를 MRI로 촬영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택시 기사들의 후부 해마가 일반인보다 확연히 컸다.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바로 그 부위가 물리적으로 커져 있었던 것이다.
더 흥미로운 발견이 이어졌다. 경력 30년 택시 기사의 해마가 신입보다 더 컸다. 반면 은퇴한 택시 기사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해마가 다시 일반인 크기로 돌아가 있었다.
매과이어 교수는 확신했다. “성인의 뇌도 근육처럼 쓰면 커지고, 안 쓰면 줄어든다.”
같은 런던에서 일하는 버스 기사들은 어땠을까? 그들의 해마는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버스는 정해진 노선만 다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찾는 도전, 그것이 뇌를 바꾸는 열쇠였다.
미엘린: 천재의 뇌에 숨겨진 하얀 비밀
브라질 상파울루의 빈민가. 축구공 하나로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이곳에서 호나우지뉴가 나왔고, 네이마르가 나왔다.
러시아의 스파르타크 테니스 클럽. 낡은 실내 코트 하나뿐인 이곳에서 샤라포바와 쿠르니코바가 배출됐다.
무엇이 이런 기적을 만들까? 답은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2005년, UCLA의 조지 바르초키스 교수는 전문 피아니스트들의 뇌를 연구하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손가락 움직임을 관장하는 뇌 부위에 하얀 물질이 유독 많았다.
이 하얀 물질의 정체는 ‘미엘린’이었다.
미엘린은 뉴런을 감싸는 지방질이다. 마치 전선을 감싸는 피복처럼, 전기 신호가 새어나가지 않게 보호한다. 구리선에 피복이 없으면 합선이 일어나듯, 뉴런에 미엘린이 없으면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미엘린이 두꺼워지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 신경 전달 속도가 최대 100배 빨라진다
- 0.2초 걸리던 반응이 0.002초로 단축된다
- 복잡한 동작이 무의식적으로 가능해진다
바르초키스 교수는 흥분했다. “인간의 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미엘린을 얼마나 두껍게 만드느냐의 문제다!”
실수하는 순간, 뇌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
그렇다면 미엘린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탤런트 코드》의 저자 대니얼 코일은 전 세계 ‘재능 온상’을 찾아다녔다. 브라질 축구 아카데미, 러시아 테니스 클럽, 미국의 음악 학교…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모두 ‘불편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테니스 연습을 떠올려보자. 코치가 공을 던져주면 받아친다. 100개를 치든 1000개를 치든, 그냥 친다.
하지만 재능 온상의 연습은 달랐다:
“스톱!”
공을 친 지 0.1초도 안 돼서 코치가 소리친다.
“라켓 각도가 2도 틀어졌어. 다시!”
선수는 동작을 멈추고, 틀린 부분을 인지하고, 수정한다. 다시 친다. 또 멈춘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일반 연습으로 100개를 칠 시간에, 이들은 10개도 제대로 치지 못한다. 하지만 뇌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이 일어난다.
“실수를 인지하고 수정하는 그 순간, 미엘린이 가장 활발하게 생성됩니다.” 바르초키스 교수의 설명이다.
브라질 아이들이 세계 최고가 되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좁은 골목에서,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정확한 컨트롤이 불가능한 환경. 매 순간이 실수고, 매 순간이 수정이다. 그들의 뇌는 미엘린 공장이 된다.
25살이 넘으면 끝? 천만의 말씀
“뇌는 25살까지만 발달한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말에 절망한다.
하지만 이건 반쪽 진실이다.
확실히 25살까지 뇌의 기본 구조가 완성된다. 전전두엽이 성숙해지고, 충동 조절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25살 이후 뇌의 진짜 능력이 깨어난다:
30-40대가 되면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강화된다. 젊었을 때는 한쪽 뇌만 주로 쓰지만, 이 시기가 되면 양쪽을 동시에 활용한다. 그래서 복잡한 문제를 더 잘 해결한다.
50-60대는 ‘결정화 지능’이 절정에 달한다. 축적된 지식과 경험이 시너지를 낸다. 직관력이 날카로워지고, 본질을 꿰뚫어 본다.
70대 이상? 놀랍게도 창의성이 폭발한다. 뇌의 억제 기능이 약해지면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가 노년에 걸작을 남긴다.
미켈란젤로는 88세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다. 베르디는 79세에 오페라 ‘팔스타프’를 작곡했다.
나이는 한계가 아니라 다른 가능성의 시작이다.
67세에 시작한 도전, 5년 후 무대에 서다
게리 마커스는 평범한 회계사였다. 숫자와 씨름하며 40년을 보냈다. 은퇴를 앞둔 67세, 그는 오래된 꿈을 꺼냈다.
“피아노를 치고 싶다.”
주변 반응은 차가웠다. “그 나이에 무슨 피아노야.” “손가락도 안 움직일 텐데.”
게리는 개의치 않았다. 동네 음악학원을 찾았다. 6살 꼬마들 사이에서 ‘도레미’를 배웠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양손을 따로 움직이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악보는 외계어 같았다. 하루에 열 번은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방법을 썼다. 심층연습이었다.
한 소절을 100번 치는 대신, 한 음을 10번 완벽하게 쳤다. 빠르게 전체를 훑는 대신, 느리게 부분을 정복했다. 틀릴 때마다 멈추고, 왜 틀렸는지 분석하고, 다시 시도했다.
6개월 후, 양손이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년 후, 간단한 곡을 칠 수 있었다. 3년 후, 쇼팽의 녹턴에 도전했다.
그리고 5년 후, 72세의 게리는 지역 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300명의 관객 앞에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했다.
“뇌는 나이를 모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 압니다.”
연주를 마친 게리의 말이다.
당신의 뇌를 깨우는 4주 실험
이제 당신 차례다. 거창할 필요 없다. 작은 변화로 시작하자.
1주차: 일상을 흔들어라 월요일부터 시작하자. 출근길을 바꿔보라. 늘 가던 길 말고 다른 길로 가보자. 뇌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양치질을 반대 손으로 해보라. 처음엔 칫솔이 엉뚱한 곳으로 간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바로 뇌가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신호다.
2주차: 몸을 움직여라 하루 30분, 빠르게 걷기만 해도 뇌가 변한다. 일리노이 대학 연구에 따르면, 6개월간 걷기 운동을 한 노인들의 해마가 2% 커졌다. 이는 시간을 1-2년 되돌린 것과 같다.
운동하면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가 분비된다. 뇌세포의 비료 같은 물질이다. 땀 흘린 후 머리가 맑아지는 이유다.
3주차: 진짜 연습을 시작하라 뭔가 배우고 싶었던 게 있을 것이다. 기타, 그림, 외국어… 뭐든 좋다.
핵심은 ‘심층연습’이다. 하루 30분만 투자하되, 제대로 하라. 틀리는 부분에서 멈춰라. 왜 틀렸는지 생각하라. 천천히 다시 시도하라.
불편하고 답답한가? 좋은 신호다. 당신의 뇌에서 미엘린이 만들어지고 있다.
4주차: 제대로 자라 수면은 뇌의 정비 시간이다. 자는 동안 뇌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한다.
첫째, 낮에 쌓인 노폐물을 청소한다. 글림파틱 시스템이 작동해 뇌의 쓰레기를 치운다. 둘째, 미엘린을 생산한다. 낮에 연습한 것들이 자는 동안 굳어진다.
7-9시간은 자야 한다. “잠을 줄여서 뭘 하겠다”는 생각은 “기름을 안 넣고 더 멀리 가겠다”는 것과 같다.
미래는 이미 당신 안에 있다
2023년,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첫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진짜 혁명은 이미 당신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신경가소성과 미엘린. 이 두 가지는 모든 인간이 가진 초능력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런던 택시 기사들이 증명했다. 67세 게리가 보여줬다. 수많은 연구가 확인했다.
당신의 뇌는 변할 준비가 되어 있다.
“너무 늦었다”는 말은 이제 구시대의 미신이 됐다. 뇌과학이 밝혀낸 진실은 단순하다.
포기하지 않는 한, 뇌는 계속 성장한다.
오늘이 당신의 시작점이다. 내일의 당신은 오늘과 다를 것이다. 1년 후는? 5년 후는?
상상해보라. 그리고 시작하라.
당신의 뇌가 기다리고 있다.
참고문헌
핵심 연구 논문
- 성인 뇌의 신경재생 발견
- Eriksson, P. S., Perfilieva, E., Björk-Eriksson, T., Alborn, A. M., Nordborg, C., Peterson, D. A., & Gage, F. H. (1998). “Neurogenesis in the adult human hippocampus.” Nature Medicine, 4(11), 1313-1317.
- 런던 택시 기사의 뇌 변화
- Maguire, E. A., Gadian, D. G., Johnsrude, I. S., Good, C. D., Ashburner, J., Frackowiak, R. S., & Frith, C. D. (2000). “Navigation-related structural change in the hippocampi of taxi driver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97(8), 4398-4403.
- Woollett, K., & Maguire, E. A. (2011). “Acquiring ‘the knowledge’ of London’s layout drives structural brain changes.” Current Biology, 21(24), 2109-2114.
- 미엘린과 신경 가소성
- Fields, R. D. (2008). “White matter matters.” Scientific American, 298(3), 54-61.
- Bartzokis, G. (2004). “Age-related myelin breakdown: a developmental model of cognitive decline and Alzheimer’s disease.” Neurobiology of Aging, 25(1), 5-18.
- 운동과 뇌 건강
- Erickson, K. I., Voss, M. W., Prakash, R. S., Basak, C., Szabo, A., Chaddock, L., … & Kramer, A. F. (2011). “Exercise training increases size of hippocampus and improves memory.”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8(7), 3017-3022.
- 나이와 뇌의 가소성
- Park, D. C., & Reuter-Lorenz, P. (2009). “The adaptive brain: aging and neurocognitive scaffolding.” Annual Review of Psychology, 60, 173-196.
추천 도서
- 노먼 도이지 (2007). 『스스로 치유하는 뇌』. 동녘사이언스.
- 대니얼 코일 (2009). 『탤런트 코드』. 웅진지식하우스.
- Merzenich, M. (2013). Soft-Wired: How the New Science of Brain Plasticity Can Change Your Life. Parnassus Publishing. (한국어 미출간)